음력 2014년 3월27일(양력 2014년 4월26일)이 숙부님의 기일이다.
제수음식을 장만해 추풍령 금릉 공원묘지에 있는 산소에서 직접 제향을 드리기로 했다.
서울과 수원에서 자식들인 원숙이 원자 형배가 같이 내려오고
조카들인 경배형 내외와 필자(원배)인 내가 오후 4시경에 공원묘지에서 합세했다.
작년(2013년 12월초 )에 혼자서 저녁드시다 황망간에 돌아가신 숙모의 장례때
오봉동에 있던 숙부님 산소도 이장하여 같이 추풍령 금릉고원 묘지에 합께 합장을 한후
처음 갖는 의미가 좀 남다른 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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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반가이 맞아주는 상수아제 내외분, 밥해먹고 가라고 손잡고 놓치않는 아지메의
넉넉한 정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포만감을 안고 간다.
정말 법없이도 살수있는 착하고 순수한 분들이다.
옛 추억을 더듬어 여기저기 살펴보며 내려오던중 골목길 안쪽에 갑덕이형네 집이 보인다.
들어가 보니 안방 다락만이 옛모습을 간직한채 폐허가 된 주인없는 옛집은
우리로선 소설을 씀직한 지난날 굴곡진 삶의 애환을 품고 서있다.
갑덕이형네집 골목안쪽엔 은희형네 집이 있다.
내 기억으론 본채 뜨락이 좀 높았고 집옆 안쪽에 자두밭이 있어
봄이면 햐얀 자두꽃이 선계에 온듯 흐드러지게 피었다.
아저씨는 학자타입으로 중학교 서무과의 장으로 봉직하셨고
아지메는 단아하고 유별나게 정이 많았는데...
아~ 지금의 이모습은 옛정취가 아니구나....
골목을 나오니 옛날 강영숙 누나네 집이 보인다.
그때는 대문옆에 큰 감나무가 있었는데.
한때는 한수형네가 이사와 살던집으로 지금은 빈집으로
마당엔 누가 심었는지 채소많이 무성히 자라고 있다.
아아~~ 여기가 어릴적 추억을 간직한 우리집터로 구나!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어릴적 영화는 간곳이 없고 고구마밭이 되었구나.
뒤산 기슭에 위치한 우리집은 대문을 들어서면 거름자리가 있는 넓은 마당이 있다.
넓은 마당 안쪽엔 본채가 있고, 본채 큰방 왼쪽엔 대청넘어 건너방이 있고
오른쪽엔 쪽마루 통로로 통하는 정지(부엌)가 있다.
안마당 오른쪽 아래채엔 소죽을 끓이는 문깥 사랑방과 가운데 방이 있고
안쪽엔 소마구(외양간)와 도장(광)이 있었다.
마당 오른쪽엔 판수아제집과 같이 써는 별체가 있어
곡식 뒤주간와 디딜방아가 있었다.
거름자리 옆에는 닭장과 통시(변소) 그리고 헛간이 있었지.
아~ 옛날이여. 남가일몽 이로구나.
이 골목은 우리집에서 방식이네 집으로 가는 골목이다.
토담이 브럭담으로 바꼈을 뿐 그런데로 옛정취가 살아 있구나
지금의 덕계마을은 어린시절의 추억속의 고향과는 사뭇 달라져
조금은 낮설어 보여도 곳곳에 비치는 옛 흔적을 보고
반가이 맞아주는 옛 고향사람들의 따듯한 정에 회포도 풀고
모처럼 고향에와 삶에 에너지를 얻고 힐링하고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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