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사 추억밟기
나는 청암사에 묘한 매력을 느낀다 .
산사의 고즈넉한 분위기도 분위기 거니와
중고시절 많은 추억을 안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89년도 말 서울 직장을 청산하고 구미로 내려와 터을 잡고서 부터
머리가 복잡하거나 할때면 어김없이 이곳을 찿곤 한다.
옛날에는 지례 대덕에서 구비구비 큰산을 넘어야 올수 있는 곳이다.
인적이 드문 이곳 산사엔 소리라곤 계곡의 물소리
이따금 소나무가지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 ,
가을녘엔 소슬바람에 딩구는 작은 낙엽 구르는 소리뿐
적막함이 도는 이곳을 나는 무척 사랑한다.
크지도 작지도 않는 이 산사는 다른 사찰에서는
느낄수 없는 묘한 품격과 정취가 있다.
탐방객중에는 일주문까지 그냥 승용차로가는 사람들을 많이본다.
필경 그런사람들은 청암사를 잘 모르는 사람일 것이고
물론 이 오묘한 정취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들 이리라.
청암사(靑巖寺)
청암사(靑巖寺)는 경북 김천시 증산면에 위치한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불령산 북쪽 기슭인 증산면 평촌리에 있으며 조계종 제8교구의 직지사 소속 말사로 편성되어 있다. 직지사와 함께 김천을 대표하는 절이다. 신라 헌안왕 3년인 859년에 도선이 처음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후 여려차례 소실되고 중건되었으며, 광무1년 부터 8년에 걸쳐 (1897~1905) 당시 고종과 엄비사이에서 태어난 영친왕 유모였던 최송설당 의 기부등에 힘입어 대운스님이 전면적으로 중건 보수함으로서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 하였으며 1987년에 청암사 승가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비구니 강원이 설치되었다.
초소가 있는 사찰 입구 주차장에 미리 차를 주차 시키고
그곳부터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여기서 부터 1km쯤 되는 산사까지 걸어서 가다보면
계곡과 낙엽과 어우러져 어느새 혼탁했던 머리와 가슴이
여과되고 정화되어 미처 산사에 도달하기도 전에 맑아진다.
그 다음부터는 낙원을 즐기는 것이리라.
이다리가 옛날에는 통나무로 된 다리이며
계곡을 건너 사찰에 진입하는 유일한 다리였다.
왼쪽의 조금 보이는 이 돌다리는 극락전으로 통하는 다리이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건물은 범종이 있던 건물로
고교시절 한달간 합숙때 오전에 영수국 수업하는 강의실로 활용 되었다.
(전번 루사태풍패해로 유실되고 새로 축조 되었다함)
옛날에는 사찰앞 계곡에는 지금 처름 석축이 없었고 다리도 없었으며
자연 그대로의 계곡이었다.
합숙시절 아침에 계곡에 내려와 바위에 걸터앉아 세수하고 했던 곳이다.
몇년전 김천 지례 일때에 스쳐간 태풍으로 인하여
계곡뿐만 아니라 대웅전 석탑앞에까지 쓸려 내려 갔다고 한다.
지금은 튼실하게 이렇게 복구 하였으나
다리와 석축이 왠지 좋게만 보이지 않는것이 왜일까..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 학교에서 7~80명 정도해서 청암사에서 합숙을 했다.
한여름 인데도 고산지대라 김천분지에 비하여 확실히 서늘한 기운이 도는 곳이다.
열대지방의 스콜 같이 한낮에 갑짜기 비가 한번씩 오는 날이 많아
계곡엔 물이 항상 바위사이로 넘쳤다.
밤10시 이후 취침때가 되면 창넘어로 큰 소나무에 걸린 달과
계곡 물소리와 풀벌레소리가 요란해 쉽게 잠을 청할수가 없다.
공부했던 생각보다 달밤에 계곡에서 목욕하던일
산사 주위로 늘어진 산딸기 와 잣 따 먹었던일
밤에 선생님 몰래 저 아래 마을쪽에 내려가
가게에서 술한잔 한답시고 객기부리던일.
이런 기억들만 생생하니 쯔쯔..
합숙하던 당시의 빛바랜 사진들
소담한 대웅전 모습이 석탑과 나무와 어우러저 너무나 잘 어울리지 않는가...
" 육화료"라고 이름 붙혀진 이 건물은
108평이나 되는 넓은 방을 가진 승가 대학의 중심 건물이다.
요사채겸 강원 역활을 하는 이 건물에서 고교시절 합숙때
학생들이 책상놓고 자습하고 잠자던 메인건물이었다.
진영각이라 이름 붙여진 이건물은
현재 고승의 영정과 조사스님들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라함.
옛날에 합숙때 이건물이 내가 거쳐한 요사채 였다.
이곳만 보면 항상 생각나는 것이 있다.
합숙 들어오기전 집에서 어머니가 절 음식이 싱겁다고 고추장을 싸 주셨다.
링거병에 고무마개를 하고 고추장 안에 마늘도 좀 넣고 해서..
어느날 점심때가 다 되어갈 무렵 10여명이 기거하는 요사채에서
자습하면서 이따금 간간히 기침소리만 들릴분 조용하던 방에
갑짜기 폭탄이 터지는듯 굉음과 함께 온방이 여기저기 벌겋다.
놀라서 다른 방 애들과 선생님들이 모두 달려오고 야단이었다.
내 가방 링거병에 있던 고추장이 폭발한 것이다.
링거병에 있던 마늘 고추장이 다 날아가 버렸다.
날씨가 더워 병안에 깨스가 발생 하여 참다 참다 터진 것이다.
천정이고 바닥이고 개럭이 되었고
공부하는 애들 마빡에 목가지에 런닝샤스에...
그때는 참 창피하기도 하고 ...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마루바닥에 흩어진 고추장을 숫가락으로 걸거모아
점심때 밥을 비벼 먹으니 그래도 다들 꿀맛 이란다.
극락전
극락전은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가 1689년 (숙종15년) 장희빈에게
폐서인이 되어 쫒겨 났을때 은거하며 만 3년을 기거 했던 곳이다.
보광전
이곳은 인현왕후가 조선 숙종15년(1689)에 장희빈의 무고로 폐위되자
극락전에 머무러면서 서쪽옆에 원당(願堂)으로 건립된 것이다.
그후 페전되었다가 고종9년(1905)에 대운과 응운 두 스님이
새로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내부에는 42개의 손을 지닌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후에 보에 적힌 26명의 상궁들의 이름을 발견하게 됨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함.
(당시 상궁들의 개인돈을 추렴하여 축조했다고 함)
보광전의 관음보살상
백련암
백련암 오르는 길
극락전에서 내려오는길에 백련암에 들렸다.
이곳은 당시 비구니승들만 있던 암자로
중학시절 하루밤 유하던 곳이다.
백련암의 감나무의 감이 가지가 휘도록 탐스럽게 달렸다.
넉넉하고 풍성한 마음이다.
산사를 내려오다
산사를 내려오는 발걸음이 아쉽다.
산사를 내려와 마을입구 식당에서 막 빚어낸 김이나는 두부가
먹음직스러워 겨냥 갈수가 없다.
막걱리 한잔 걸치고 나니 출출하던 배가 거뜬하다.
운전은 술먹은 핑게로 집사람에게 맞꼈다.
식당 할머니다. 참 소탈한 웃음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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