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1월19일(7일째)-- ( 아이발릭-에페소-파묵칼레 )
오전8시경 아이발릭 출발.4시간정도 걸려 고대유적지에페소로 이동함.12경에 에페소에 도착하여 에페소에서가장아름다운 건축물 셀수스도서관,2만4천명이 수용가능한 대극장,아고라 시장터,시리아풍의 조각된 신들의부조, 하드리아누스 신전 등을 보고 오후4시경 목화의성이라 불리는 파묵깔레로 이동 .7시경 호텔체크인및 석식을 하고 자유시간에 리조트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었다. 터키의 온천욕은 작은 수영장같은 곳으로, 수영복을 입고 남녀가 같이 들어가 온천욕을 즐겼다. |
에페소
에페소는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도시 전체에 유물이 산재해 있다. 사실 에페소는 여러 유적이 발굴되고 있지만 정확하게 도시의 기원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 많은 민족과 문화가 이곳을 지나갔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유적을 볼 수 있는 유적 도시가 되었다. 에페소는 로마제국 당시 아시아의 수도를 페르가뭄에서 에페소로 옮긴 덕에 많은 건축이 이루어지고 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이곳에 체류하기도 했으며, 이후 아우구스트스 시대에 더욱 번성하여 로마의 대도시로 성장하였다.기원 후에는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는데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이곳에 전도 여행을 와 교회를 세우기도 하였다.하지만 7세기 부터는 오스만 제국의 힘이 커져 잦은 침략으로 피폐해 갔으며 이후에는 오스만 투르크의 통치에 놓이게 되었다.120년 동안 공사 기간을 가지고 완성됐다는 아르테미스에 바쳐진 신전은 높이가 19m의 대리석 127개의 기둥을 가지고 있던 신전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신전으로 지으려고 했다고 한다. 지금은 기둥 하나만 딸랑 남아 있지만. 그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보다 두배이상 컸다고 하니.... 정말 어마 어마한 크기임을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의 도로가 대리석으로 깔려있고, 건축물의 화려함과 웅장함은 보는이로 하여금 압도감을 주기에 충분 하다.게다가 대형 목욕탕과 도서관등....약 25,000명을 수용할수 있는 3층규모의 원형극장은 특별한 음향 장치 없이도 소리가 깨끗히 울려퍼져 나간다... 에게해 최대의 유적지인 에페소...이 모습만으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전형적인 건축기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에페소로 오면서 버스 차창 농촌 풍경이다.
에페소로 가던 길목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유적터를 잠시 내려서 보고감
아르테미스 신전-기록에 의하면 세계최대의 신전이었다는데 지금은 기둥하나만 달랑...
에페소로 가던중 중간에 현지식으로 중식을 하고 잠시 현지 쇼룸에서 가죽패션쇼까지 봤다.
여행객이 즉석 모델이 되어 패션쇼(?)까지....
에페소의 오렌지나무 가로수/이쪽 지방은 오랜지 경작을 많이 하고 있다.
누가의 묘
에페소 유적지를 들어가기 전 꼭 만나게 되는 누가의 무덤은기독교 유적지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관리가 않되있다.
누가가 사도바울을 만나 평생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삶을 살고 마감한 곳이라는것을 알게된다.
에페소 유적
B.C 2-6세기에 에게해의 대도시로 무역의 중심지 였으며
그리스 상인들로 활기를 띠던 도시 였다.
지금은 작고 폐허같이 보이지만 교회 역사에서 에페소는 예수의 모친 성모 마리아와
제자 사도 요한과 관련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도 요한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바울로 인해 복음이 왕성히 전해지는 에페소로 오게 되었다.
사도 바울이 A,D 53년 이곳에서 말씀을 전하며 교회를 세워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A,D 262년 몰락하여 그 화려한 시대는 점차 막을 내렸다.
에페소의 유적지를 돌아보며 과거의 영화로움과기독교가 번성했던 도시의 면모를 읽을수 있다.
지금은 폐허처럼 보여도 돌기둥 하나, 조각품 하나 하나 에서
그 당시의 예술적인 감각과 황금기를 보내던 옛사람들의 여유로움이
물씬 풍기는걸 느낄수 있다.
소 아시아 주의 수도이자 최대의 항구 도시였던 에페소엔 20만명이 거주했다고 하니
그 당시에 얼마나 번성하던 도시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에페소는 이즈밀로 부터 74km거리에 위치한 도시로서 바울로 시대만 해도 번창한 항구였으나
카이스트로스 강을 타고 흙이 씻겨 내려와 지금은 배가 드나 들지 못하고
바다와 에페소 사이에는 큰 거리가 생겼다.
에페소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의 입성으로 해방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후 히라브이 장군이( Lysimachos )
에페소에 경기장,체육관,원형극장을 세워
에페소를 크게 발전시켰다.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된 에페소는 소아시아 서부 지역의 수도가 되었고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 정치적,경제적 번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기원전 88년 시민들이 로마의 압제에 항거하여 라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자 로마의 실라 장군은 에페소를 완전 초토화 시켰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부터 다시 재건된 이 도시는
아시아 속의 정치,상업,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금의 에페소는 오스트리아 고고학자들의 노고로 발굴된 것임.
쿠레테스(제관들) 거리
바실리카 끝에서 휘어진 길이 셀수스 도서관 까지는 직선으로 이어지는데
이 넓은 도로를 크레테스(제관들)거리라고 하며 돌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에페소의 시청건물 중앙에 있던 에페소의 성화(聖畵)를 지키는 제관들의 행렬이
지나던 길이라서 쿠레테스(제관들)의 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른곳과 차별화된 귀족동네-바닥이 화려한 고급문양 대리석
하드리아누스 신전
128 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에페소를 방문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38 년경 퀸틸리우스가 코린트 양식의 신전을 세우고 황제에게 봉헌한 신전 이라함.
138 년경에 만들어진 예술적인 조각품들이 오늘날의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감각이었던 같습니다.
스콜라스티카 목욕탕
1세기에 세워진 3층 구조의 목욕탕이 지진으로 파괴 되었는데
4세기에 부유한 기독교인인 스콜라스티카에 의해 재건축 되었기에
그녀의 이름을 따서 스콜라스티카 목욕탕 이라고 합니다.
로마인들은 목욕을 좋아해서 곳곳에 커다란 목욕탕을 세웠으며
탈의실,열탕,냉탕에 체력단련 시설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인에게 목욕탕은 휴식장소이며,운동 장소이며 사교장 이었다고 합니다.
로마인들은 목욕탕에서도 토론을 즐겼다고 합니다.
로마시대의 수세식 변소
스콜라스티카 목욕탕과 하드리아누스 신전 사이에 있는 공중 화장실. 지극히 친환경적인 수세식 화장실 이었다고 함.
공중 화장실을 목욕탕 보다 낮은곳에 설치하여 목욕탕에서 사용한 물을 재활용하는 차원에서 화장실로 흘려 보내면
자동적으로 수세식 역할을 했다고 함. 로마인들은 화장실에 앉아서도 옆사람과 토론을 즐겼다고 합니다.
한꺼번에 60명까지 볼일을 볼수 있었다합니다.변기 사이에 특별한 칸막이 시설이 없었다는데
치부를 드러내는 불상사는 없었다고 합니다.
로마인들이 입던 토가 라는 옷은 공중 화장실에 앉아서도 불편을 느끼지 않던 옷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이런 화장실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셀수스 도서관
에페소 유적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으로 손꼽히는 셀수스 도서관은
에페소 유적 가운데 전면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화려한 모습을
상상하게 해주었습니다.
셀수스 도서관은 A,D 135 년 C,Aquila에 의해 아시아 지역의 통치자 였던
그의 아버지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를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이 도서관에는 세 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상단은 지혜,운명,지식을 상징하는
정결한 여성상들로 장식되어 있고,한때 12,000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던
대규모 도서관 이었다고 합니다.
건립 당시에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페르가몬 도서관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규모의 도서관 이었다고 합니다.
1,900년 전에 두루마리 장서를 12,000권 소장하고 있었다면
그 당시의 학구열이 얼마나 높았는지 상상이 됩니다.
재미있는 광고판
세계 최초 광고판인 셈이다. 당시에 매춘이 허용된 사회였다.
발 "발사이즈 보다 작은 사람은 출입금지",
하트는 "사랑해 줄께요", 조그만구멍은" 돈을내시오"
원형극장
25,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 입니다.
헬레니즘 시대에 세워진 원형극장은 현재 남아 있는것은 1-2세기 경의 유적 이라고 합니다.
무대에서 연극이나 연주를 하면 전 객석으로 울려 퍼졌다고 합니다.
오디오의 원형이 이곳이라고 합니다.
무대에서 객석에게 까지 울려 퍼지는 효과는 원형이 주는 에코의 효과도 있지만
인공적으로 화음을 조절해 주는 부분을 만들어 소리의 파동을 만들게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천연적이고 과학적인 음향효과를 지닌 원형극장이 그 옛날에
만들어진 것이라 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음향효과 뿐만 아니라 극장은 바다를 향해 지어 졌는데
공연을 보면서도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적군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20만 인구가 살던 때에 25,000명 정도가 이곳에 모였으면
도시 인구의 십분의 일이 이곳에 모였을 것입니다.
공연을 보는 여유속에서도 적을 향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기 위해
과학적으로 설계된 원형극장을 뒤로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발걸음에
역사의 흔적들이 묻어 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바다로 가는길. 지금은 다 메워져 육지가 되었지만..
바다로 통하는길 에서 원형극장을 배경으로
에페소 관광후 3시간 정도 걸리는 파묵깔레로 이동 호텔 체크인--호텔내 온천욕 이전으로
'여행 > 여행기(해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중해 관광--제9일(콘야-카파도키아-이스탄불 (0) | 2012.01.07 |
---|---|
지중해관광--제8일(파묵칼레-콘야) (0) | 2012.01.07 |
지중해 관광--제6일(이스탄불 -트로이 -아이발릭) (0) | 2012.01.07 |
지중해 관광--제5일(카이로-이스탄불) (0) | 2012.01.07 |
지중해 관광--제4일(아스완-아부심벨-아스완-카이로) (0) | 2012.01.07 |